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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9일 화요일

미주뉴스앤조이 '성격장애와 목회' 신완식 목사의 목회자론

댓글에서 옮겼습니다. 좋은 글을 옮겨주신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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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07 18 () 13:09:09 [조회수 : 432]

목회자는 교회지도자이다.

지도자는 신분이자 역할 개념이며 속성은 공적이다. 공적이라는 것은 이타적이며
공식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자기 자신이나 자기 가족만을 위해 일하는 존재가 아니라 좁게는 자신이 목회하고 있는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그리고 보다 넓게는 사회와 세계를 대상으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목회자, 철저히 공인이라는 사고부터 이를 위해서는 우선, 목회자는 사고(思考)하는 영역에서부터 공공적이어야 한다. 사건이나 사물에 대하여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설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를 들면,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성서 본문을 자기 자신의 주관적인 취향에 맞추어 읽고 설교하는 편이다. 심한 경우 자신의 편리를 따라 자신의 허물과 실수 혹은 죄를 덮고 가리기 위하여 하나님 말씀을 빙자하기도 한다. 자신을 합리화하고 변호하는 일에 설교를 동원할 때도 있다. 이것은 목회자가 철저히 공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때문에 벌어지는 비극이다.
목회자는 자기 가정과 심지어 담임하고 있는 교회 울타리를 넘어서 이웃 사람들과, 이웃 종교지도자들과, 세계인들과 다른 여러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도 기꺼이 대화할 있는 사고의 개방성과 유연성 그리고 객관성을 지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직된 사고,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생각, 획일적이고 폐쇄적인 사고, 극단적 독선적 폭력적 냉소적 억압적 파괴적 비민주적인 생각을 극복할 있어야 한다. 편협하고 옹졸한 사고는 목회자 자신뿐만 아니라 그에게 귀를 기울여 설교를 듣는 청중들의 정서와 그리고 신앙세계에 치명적인 아픔을 초래할 수도 있다.

목회자는 언제든지 누구와도 대화하고 토론할 있도록 자기개방에 민첩할 있어야 한다. 사고가 유연해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독서하고 연구하면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역사, 과학, 철학, 문학과 같은 다양한 학문 분야와도 지속적으로 대화해 나가야 한다. 지적 개방성과 탐구정신이 지적 겸손과 더불어 깊어가야 한다. 그래야 공인으로 폭넓은 사고를 있을 것이다.

목회자의 인격장애 피해자는 누구?

만약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엄마가 분노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해보라. 승객을 가득 태운 마을버스 기사가 한참 울분을 토하고 있다면? 요리 중에 있는 주방장이 누군가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고 있다면? 다소 극단적인 가정이기는 하겠지만 그에 대한 해답을 얻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엄마와 버스 기사 그리고 주방장에게 필요한 것은 정서적인 안정이다. 그들이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그리고 인격적으로 불안한 상태라면 피해는 본인들뿐만 아니라 아기와 승객들과 고객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것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에게 과연 목회자는 어떤 존재일까. 말씀의 젖을 먹이는 엄마요,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운전기사요, 그리고 생명의 양식을 제공하는 요리사와 같지 않을까. 그렇다면 목회자가 지녀야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덕목들 가운데 하나는안정감 아닐까 싶다. 우선 정서적이고 인격적이며 심리적인 면에서 말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넉넉한 모유와 탁월한 운전술과 뛰어난 요리 솜씨가 빛을 발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을 테니까. 하나님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교훈,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창조와 구원 등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설교해야 하는 이들이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전반적으로 그가 비관적이고, 염세적이며, 패배주의적인 생각에 지배를 당한 설교한다면 어떻게 될까. 타인에 대하여 억압적이고 지배적이며 차별적인 심사를 가진 성서를 가르친다면? 작은 일에도 쉽게 신경질을 부리고 혈기와 조급증에 사로잡히는 사람이 하는 축복기도는 과연 어떤 열매를 맺을까. 열등감과 우월감 질투심 그리고 과시욕과 허영심에 노출된 이가 삶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 논한다면 듣는 이들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 생각하는 면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목회자는 성도들보다 훨씬 안정되고 성숙한 사람이어야 것이다. 그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공인이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교회'인가 '교회에 속한 '인가

교회는 공동체다. 공동체는 조직이다. 교회 조직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신령한 영적유기체임이 분명하지만 그것을 실제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관계라고 하는 것이 있다. 흔히 이해관계라고 부르는 말이다. 이해관계는 대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욕구, 갈망, , 생각, 목적 등에 따라 형성된다. 사람이 모여서 이루고 있는 교회 공동체에도 이해관계는 엄연히 존재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타가 회심했다고 자부하는 이들로 구성된 신앙 공동체에 끊임없는 갈등, 긴장, 불협화음, 분쟁과 싸움이 현실적으로 벌어지는 이유는 바로 때문이다. 다양한 인간들로 구성된 조직체에는 서로가 합의하거나 약속한 일정한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상호신뢰와 존중이라는 요소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데 거기에는 예측 가능한 생각과 행동이 뒤따라야한다. 보편적인 상식과 이성에 근거하는 말이다. 원리에 가장 적절한 제도적 장치가 민주주의 원칙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대화와 소통과 토론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이견, 불일치, 갈등, 견해 차이들을 조정하고 줄여 나가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독불장군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일이다.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해서 때로는 자기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과감하게 포기하거나 양보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매사에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를 취한다. 자기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고집불통으로 생떼를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공동체 생활에서 생명과도 같은 것은 '쌍방'이라는 원리이다. 하지만일방 함몰된 사람들이 많다.

목회자는 지도자로서 누구보다도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있어야 한다. 그는 자칫 목회자 자신도 교회 공동체 내에서 지체의 부분이라는 생각을 망각하기 쉽다. 그런 이들은 '교회에 속한 ' 아닌 '나를 위한 교회론 시종일관 주창하게 된다. 목회자는 결코 독재적이어서는 된다.

신완식 목사 / 대구성서아카데미 칼럼니스트

* 글은 대구성서아카데미 홈페이지에도 실린 글입니다.

댓글 46개:

  1. 목회자의 인격장애 피해자는 누구인가?2011년 7월 20일 오후 3:43

    누군 누구?

    바로 우리 성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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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최목사님이 설교중 목사되기위해 정신 이상 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자기는 괜찮았다고 하였는데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 아닌지?
    많은 영혼을 책임진 직분의 사람이 정신적으로 의심을 받는 다면 안될일.
    감독님에게 건의 할일 아닌지.
    자기는 자기 병을 모르는 법, 그러니 PPRC의장님/평신도 대표님.
    이곳에서 뼈를 묻으실려면 먼저 정신적으로 건강한지 확인을 하고 우리의 영적 지도자로 인정을 해야하는 것 아닌지.

    군대에서 정신 이상자가 난동을 부려 무고한 친구들를 죽이는 것도(최근 해병대) 큰일이지만(우리 교회도 해병대 출신 몇명이 난동를 부리고 있지만)
    영적 지도자라고 하면서 오자마자 많은 성도들을 넘어지게하고 분열시키고 쫓아내고 있다면 이것도
    영적 정신 이상 현상은 아닌지.
    정신과 카운셀링이 절대 필요한 것으로 사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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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목회자는 영성과 품성으로 평가받는다.
    목회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참된 덕으로서의 윤리와 도덕이다. 예수께서 사셨던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이상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산상보훈이 우리에게는 이상적인 윤리이지만 그것을 단순히 이상으로 치부해 버릴 수는 없다. 목회자들이 해야 할 과제는 최선을 다해 복음이 제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삶의 평가는 주님의 몫이다. 목회자의 골방 기도와 자신이 먼저 은혜 받은 말씀을 전할 때 듣는 교인도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최성남 목사님께는 불가능한 요구이기에 오늘도 좌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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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나 역시 좌절한다.2011년 7월 20일 오후 6:24

    나 역시 좌절한다.

    오늘의 이 답답한 교회의 모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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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이모 장로의 월권2011년 7월 20일 오후 6:57

    이모 장로님이 교회 모든 교회 공사를 임의로 김모 권사에게 다주었는데 그렇게 1분에게 이장로님 직권으로 다 공사를 줄수 있는것인가요?
    어떻게 다른 업자들에게 견적도 받아보지 않고 혼자서 결정하고 다닐수 있으신지?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그시점에 이장로님이 집을 이사 가셨다고 하는데 이것과
    관계가 있으신것인지요 ?
    정확히 아시는분이 있으시면 알려 주세요.

    이런문제도 한번쯤 확인해 보는것도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교회상대로 이권에 기대고 계셨던분들은 예전같은 호황(?)은 기대 하기 어려울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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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4번님 좌절 하지 마세요.

    나는나는 삯군목사 염불에는 관심없고 젯밥에만 신경쓰네
    반대의견 묵살하고 저항하면 쫓아내라 전도사들 별거아냐
    중고등부 상한영혼 니문제지 내문제냐 아이들이 돈내더냐
    물주들만 잡아잡아 우핫핫핫 거참쉽네 내맘대로 휘둘리네
    이것들은 착한거냐 속이없냐 골빈거냐 무지하냐 그저잠잠
    다만몇놈 소란떠는 대여섯놈 쫓아내면 모두장악 교횐내꺼
    다되었다 이루었다 도랑치고 가재잡고 장땡이네 할찰나에

    아이쿠나 이게뭐냐 저것들이 웬놈이냐 블로근지 신문곤지

    오만산통 다깨누나 거짓으로 싸발랐던 우리음모 드러나네
    아이쿠나 큰일이네 눈물연기 가짜기도 하나둘씩 산통일세
    대표장로 피피알씨 도대체가 무지무능 하는족족 헛다리에
    두는족족 악수로다 도대체가 바꿀려도 똑똑한놈 하나없고
    어이할고 이내앞길 감리사와 감독에게 사바사바 해놨는데
    블로근지 죽일놈들 대체누가 정보주나 모르는게 하나없고

    거짓으로 덮었던일 백일하에 드러나네 우리편에 간첩있나
    꺼진불도 다시볼껄 후회해야 소용없고 차떠난뒤 손들기네
    애시당초 나목사께 죽을죄를 질때부터 가슴한쪽 깊은곳이
    찌르듯이 아프더만 목구멍이 포도청에 포기하긴 억울하네
    마음굳게 다시먹고 악어눈물 다시한번 원점에서 시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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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6번
    제법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구료.
    조금더 갈고 닦으면 아류 소리는 안듣겠네.
    계속 정진은 말거라.
    운율시와 는 거리가 먼것 같구나.

    마음에 감동을 가지고 써야지 운율도 살리면서...
    마른마음 으로 쓰도록..

    지금 이시간은 땡!!!

    조금더 노력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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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이모 장로님이 그런 월권은 안했다고 생각 되지만
    집 이사 하신것과는 무관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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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이모 장로님의 부하 길들이기2011년 7월 21일 오전 8:58

    교회를 상대로 돈벌이 하게 한 사람은 이 X X 장로님입니다

    2년동안 재단이사장으로 있으면서 교회의 작고 큰 공사는 모두 김모권사님에게만 주었읍니다.
    물론 다른 업체의 가격을 알아보지도 않구요.

    이것은 무슨 특혜입니까?

    같은 해병대라고 밀어준것입니까?
    그리하고도 깨끗하고 바르게 교회일을 하셨다고 말씀하실수있읍니까?

    이장로님
    이제 그만 교회일에 관여 안하시는 것이 명예로운 은퇴에 도움이 되실것 같습니다.

    답글삭제
  10. 재단 이사장으로 월권을 많이 했지요.
    성전앞에 말뚝 박아 놓은 것좀 보십시요.
    교회가 FEDERAL BLDG.이나 됩니까?
    많은 교인이 보기 싫다고 하고 반대를 하였는데도
    혼자 결정하고 한 것입니다.

    재단 이사회 2년동안 김모권사에게 특혜준것 감사 해야합니다.
    어떤 이유로 특혜를 주었는지.
    다른 업체 가격 비교하였는지.
    적법한 절차를 밟아서 오다를 주었는지.
    RABATE는 없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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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정신 질환중에 "파괴적 자기 도취증"이라는 것이 있읍니다.

    "자기도취증 장애의 특징을 과대망상적인 자만심, 자기의 개인적인 비상함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미친놈”으로 취급한다는 인식, 개인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이기적으로 이용하기,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자기 것과 동일시하지 않는 증세로 진단한다. 극단적인 자기도취증 장애자로 오클리는 히틀러, 마오쩌둥, 차우세스쿠, 니야조프 등 희대의 독재자들을 든다. 히틀러는 베르히테스가덴에서 한 회견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에게 “귀하는 역사상 처음 보는 가장 위대한 독일인 앞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하고 물었다. 마오쩌둥은 문화혁명 시절에 자신의 “어록이 장님과 귀머거리를 치료하고 중풍환자가 수족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냈다.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는 “나와 같은 사람은 500년 만에 겨우 한 사람 나올까 말까한 인물”이라고 호언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사파무라트 니야조프 현 대통령은 그 자신의 초상화를 사실상 모든 공공장소에 걸어놓고, 얼굴에 반사된 햇빛이 도시를 번쩍번쩍 비칠 수 있게 해가 떠 있는 쪽으로 계속 회전하는 금박 입힌 동상을 수도에 세워놓고는 한다는 소리가 “나는 거리에서 내 사진과 동상을 보는 것에 개인적으로 반대한다. 그러나 국민이 원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했다. 오클리가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김일성이나 김정일도 이들 못지않은 극단적인 자기도취증환자일 것이다."

    부임하자마자 담임목사 타이틀을 그렇게 강조하여 모든 인쇄물에 "담임 목사"글자 크기를 크게 하더니 급기야 본인은 아무 잘못이 없으며 회개 할것이 없다며 신과 같은 존재로 말하고 있읍니다.
    설교에서도 그렇게 표현을 하고 있읍니다.

    혼자 그런 자기 도취에 빠지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영적지도자라고 자청을 하며 교인들을 죄인으로 몰아 쫓아 낼려고 이런 저런 유언 비어 만들기, 과거 사역한 것 뒤져 잘못이 없나 찾아내기등 정상적인 사람이 할수 없는 행동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하고 있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파괴적 자기 도취증" 증상임이 분명합니다.
    최틀러가 되어 가는 것이지요.

    더 큰 피해를 당하기 전에 정신 감정 꼭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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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맞습니다
    그런 증상으로 보이네요.
    그런데 어떤면에서는 "피해 망상증" 같기도 합니다.

    "피해 망상증 환자를 조심해야한다."는 정신의학 상당학 기고문 소개합니다.
    이증상은 없는 지 보십시요.

    "겉으로 멀쩡해도 머리가 병든 사람이 있는데, 바로 피해 망상증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과 같이 지내면 백이면 백 다 피해를 보게 되고 그 황당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피해 만상증은 근본적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증상은 기억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그들이 경험한 일상 생활이나 사건을 해석함에 있어서 상식적이지 못하고 정상적이지 못하다.
    피해 망상증 환자는 자신이 정신 병적인 증세를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결코 정신병을 않고 있지 않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파해 망상의 내용은 비교적 그럴듯해 보이는 것에서부터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예를 들면 나를 몰아내기 위해 음모를 짜고 있다--- 내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누군가가 내 뒷조사를 하며 나를 감시하고있다 등등 이다.

    만약 환자에게 그 생각이 틀렸다고 설득을 할 경우 오히려 그 망상이 더욱 굳어지며 위협적인 자세를 보인다.

    망상의 내용에는 정교하게 체계화된 지속적인 망상으로 누군가가 자신을 고의로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피해망상,
    배우자 질투망상, 색정적 망상도 있다.

    이 증세를 가진 경우 주변에서 아무리 설명을 하고 잘못된 생각이라고 증거를 제시해 주어도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생각이 근거가 없고 틀렸다고 지적하면 이 환자는 더욱 화를 내고 심지어 그렇게 설득하는 사람까지 의심을 한다.

    피해 망상증 환자가 글을 쓴것을 보면 정상인과 구분이 쉽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피해 망상증 환자들은 대부분 자존감이 낮다.

    본인은 절대로 피해 망상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 하지만 그 가족은 말할수 없는 고통을 당한다.
    피해 망상증 환자는 스스로 정상인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지만 분명히 해석체계가 비 정상적인 정신병 환자이다."

    담임 목사님이 다음 같은 말을 했다면 위 증상과 같지 않습니까?

    잘못했다고 하면 나를 몰아낼려고 하지 않겠읍니까?
    등뒤에서 칼을 꽂을려고 하지 않습니까?
    내 목에 칼을 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부임한지 2달부터 날 내보낼려고 했읍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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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OMG!!!!!!!!!!!!

    윗분들 글을 보니 너무 비극입니다.
    어떻게 담임목사가 피해망상 환자일 수 있는 것인지요?
    교단은 그 많은 연회비 받아먹고, 목사들 정신감정 조차 제대로 하지 않한단 말인가? 교회란 영적인 곳으로 목사가 영이 제대로 박혀있지 않으면 그 자체가 사탄의 소굴이 되는 것을.

    어쨋든 그런 입장에서 보면 내가 잘못했습니다. 담임목사가 병자인 것을 모르고 나는 상식적인 문제제기만 했으니, 이 기회에 최 목사에게 사과합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하시지, 공연히 사람 욕하게 만들면 안되지요.

    문 장로, 최 권사는 그 아픈 분을 지금까지 병원한번 모시지 않고 무얼했단 말씀입니까? 그 분은 뉴저지에 온 지 얼마 안되어 정신병원이 어디가 좋은지 잘 몰라 못 가는 것 같으니 빨리 모시고 가십시오.
    그동안 우리 교회 어디 안 팔아먹을테니 천천히 요양 좀 하시고, 바른 정신으로 다시 만나뵙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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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11번,12번. 같은분의 글

    본인이 스스로 피해망상 증세가 아주 심각 하다는것을 역설적으로 토로 하고 있군요.
    잘 알겠습니다.
    "파괴적 자기 도취증"을 가지고 있는 본인부터 정신감정 하시고 본인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파괴적인지..생산적인지.. 스스로 판단해보고 본인 스스로도 헷갈린다면 우리교회 윤장로님이 정신과 의사 이시니 정밀 검사 받아보시길 적극 권면 합니다.
    아마 무료 상담도 가능 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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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14번님

    충고 감사합니다. 저는 갈 의사가 있읍니다.
    최목사님과 같이 가면 안될까요?
    최목사님에게도 얘기 전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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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위에 글을 보니 목사님이 이상 하시긴 이상 하신가봐요.
    저도 그렇게 생각 되네요.
    지금까지 일년동안 우리교회에 오셔서 하신일들을 보면
    이상하다 생각 했었어요.
    빨리 시무 장로님들이 어떻게 병원에 모시고 가셔서
    진단을 받아 보셔야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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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14번님

    윤장로님이 무료상담 하신다니 이모 장로님 과
    부인이신 이모 권사님 도 꼭 상담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나목사님 부부에게 해꼿이를 하셨는데
    상담이 꼭 필요하시니 14번님께서 권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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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1번, 2번, 3번, 4번, 5번, 6번님아 재미 있는 노래 가사입니다.
    찾아서 들어보고 즐겁게 주무세요.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거다.
    뭐냐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니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오늘 밤 절대로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진 못할거다 그게 뭐냐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이번 건 니가 절대로 믿고 싶지가 않을거다. 그것만은 사실이 아니길 엄청 바랄거다.
    하지만 나는 사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매일매일 신난다. "
    song by 장기하와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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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오늘의 말씀

    채워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섬김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내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그 힘으로 주님의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 다른 사람을 섬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역’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과 세상을 위해 사역할 때, 하나님으로 부터 공급을 받지 못하면 탈진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 힘든 적이 많았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갑자기 큰 은혜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봉사와 헌신에 앞장서서 주의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을 봅니다. 그러다가 얼마 가지 않아 탈진하는 모습도 꽤 보게 되는데, 왜냐하면 은혜는 받았지만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해 자신의 육신으로 최선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경우 자신이 헌신한 만큼 다른 사람이 헌신하지 않는 것을 볼때 그런 사람을 비난하게 되고, 그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가 벌어지고 사역을 할수록 기쁨이 넘치기보다 오히려 스스로 부담이 가중되어 결국 지쳐 쓰러지게 됩니다.

    사역이라고 하면 흔히 사람에 대한 사역만을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역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사람에 대한 사역’과 하나님에 대한 사역’입니다. 우리는 이 두 사역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역’(Ministry to God)이라는 말은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때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해집니다. 그런 다음 그 생명의 충만함이 다른 사람에게 흘러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사람에 대한 사역’(Ministry to people)입니다. 그때 비로소 온전한 사역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사역이 먼저라는 사실과 그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 받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야지, 자기가 노력하여 얻는 감동이나 하나님에 대해 연구하여 아는 지식 또는 헌신의 업적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것이 사역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섬긴다고 할 때에는 자기에게 있는 것을 내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임하신 성령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고 전달하는 통로가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섬김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성령충만해야만 합니다.

    말라가는 샘에서 무작정 물을 퍼내기만 하면 나중에는 흙까지 퍼내는 것처럼,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생수가 없는 상황에서 내게있는 것을 퍼주면 내 안에 있는 찌꺼기까지 퍼주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면 내게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지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겠습니까? 하나님의 역사 또한 나타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열심히 섬기는 것 같고 열심히 퍼주지만,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럴 때는 왜 그런가 하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역이 자신의 인간적인 것들을 퍼준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하나님에 대한 사역이 부족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금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회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수 없는데 하나님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오셔서 나를 채워주옵소서.”

    하나님과의 관계의 통로가 늘 충만하게 열려 주어도 있다면, 그것은 아무리 퍼주어도 끝없이 샘솟는 샘물과 같아서 몸도 마음도 가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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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시편)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서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5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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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18번아

    들어 보았는데 최목사님이 들어 보시면 딱 이시네.

    교인들 때려잡고

    " 나는 사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매일매일
    신난다. "

    제 정신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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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CK 성도님,
    매번 성도님이 올려 주시는 성경 말씀에 감동을 받읍니다.

    좋은 하루 & 주말 갖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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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뱀의 눈으로 교인들을 째려보는 목사님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2011년 7월 24일 오후 12:50

    뱀의 눈으로 교인들을 째려보는 목사님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다. 오늘 목사님의 말씀퍼럼.

    나는 오늘 놀라운 현장을 교회에서 직접 목격했다.

    2부 예배후에 친교실에서 최목사께서 뱀같은 증오의 눈길로
    c장로님, S/Y 권사님들을 목전에서 째려 보는 모습,충격의
    현장이였다.

    폭력영화에서 많이 보던 바로 그 증오의 눈길,잊을수가 없다.

    무엇이 이분으로 하여금 그 눈빛을 가지게 하였는지 난 알 수가 없다.

    단지,매우 서글플 뿐이다. 이 주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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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나는봤네 나는봤네 독사같은 뱀눈으로
    성도님을 노려보는 최목사의 냉혹함을
    우연히도 곁에있다 목격하고 말았다네
    나도전엔 들었지만 저런얘기 그런소문
    아무려면 목사인데 그럴리가 있겠냐고
    믿고싶지 않았었고 애써부인 했었다네

    그렇지만 바로오늘 내눈으로 목격한건
    너무나도 끔찍했네 흡사악몽 같았다네
    그건그건 정상적인 목사눈이 아니었고
    냉혹하고 소름끼친 증오의눈 삯군의눈
    인사하며 악수청한 성도님을 외면하는
    안면몰수 후안무치 적반하장 기막히네

    목사님이 아니라도 세상일반 누구라도
    그럴수는 없는거네 그리하면 인간포기
    세상적인 나이로도 자기보다 웃어른에
    인품이나 지성이나 자기보다 한참윈데
    사람나고 목사났지 예수위에 목사더냐
    삼강오륜 이민가고 예의범절 실종됐네

    허허거참 고약하다 뉘집아들 이라더냐
    세상에선 그런사람 호로O O 욕한단다
    부모조상 욕보이는 상O 이라 칭한단다
    여보시오 그래서들 예수믿는 우리들은
    복지린지 대구지리 풍수지리 필요없소
    복지리나 대구지리 필요한건 와사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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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다윗은 누구보다도 파렴치한 성범죄에 청부 살인까지 저지른 잔혹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단 선지자의 경고를 듣고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렸다.
    하나님은 그런 그의 태도를 인정하셨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교회 최 목사의 주변에 나단 선지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단의 역할을 해야 할 장로 및 임원들은 선지자적 사명을 내팽개치고 있다.
    최 목사는 아래로 부터, 밖에서 들리는 수많은 나단의 외침을 들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외침들이 최 목사 자신을 음해하거나 교회를 흔들려는 사탄의 계략으로 여겨진다면, 다음의 말씀은 어떠하신지.

    "죄를 지으면 이성이 마비되고,
    어리석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죄를 지으면, 생각하기 싫어진다.
    왜? 자꾸 생각하면 죄책감이 들고,
    죄의식으로 인해서 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깊이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다윗은 밧세바와 범죄한 이후에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회피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하나님은 그의 생각을 자극시키신다.
    그리고 회개케 하신다. 이것이 복이다.
    왜 정결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그래야 치열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자유로울 만큼 깨끗한 인생을 살아야
    지성과 영성의 발전이 있다.
    죄는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
    반면에 회개는 우리의 진로를 더 빠르고 강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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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풍수지리 좋아하면 자리깔고 나가시쇼
    테네시든 아오지든 아마존은 어떠시오
    좌청룡에 우백호에 우귀정에 좌헝소에
    어절씨구 명당이네 조상님덜 음덕인가
    자손만대 주구장창 뼈바르고 회를쳐서
    감리사고 감독이고 대를이어 해먹겠네

    눈엣가시 박전도사 다음주면 쫒겨나네
    으흐흐흐 아이좋아 그다음엔 누굴칠까
    ㅇ전도사 ㅎ전도사 남일인양 안심마소
    니맘대로 일방통행 인정사정 안본다오
    풍수지리 도사라도 강호고수 예있으니
    불안하면 언제든지 일차내방 상담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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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25번 글에 붙입니다.

    다윗이 훌륭했던 점은 나단이 그의 죄를 드러내었을 때, 곧 바로 죄를 뉘우치고 회개한 점입니다. 우리의 최성남목사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죄와 잘못을 드러내며 회개를 촉구하였지만 본인은 아무 회개할게 없다고 하며 이제껏 거부해왔습니다.
    이제는 목사로서가 아니라 워낙이 하나님을 알기는 하는 사람인지도 믿어지기가 어렵고, 정상적인 정신상태를 가진 사람으로도 보기가 의심스럽습니다.

    거의 정신병 환자 수준으로 여기면 그동안의 최목사가 저질렀던 여러가지 일들이, 특히 가만히 있어도 열흘 후면 한국으로 돌아가실 나목사님을 공격했던 일등, 이해가 쉽게 됩니다. 성경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로 여기는 다윗과 정신병 증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의 비교 자체를 하시는 게, 아직도 우리 교회의 문제의 본질을 잘 깨닫지 못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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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최성남 목사님
    최근에 목사님은 목사님을 반대하든가 의견이 다른 교인들을 성가대, 사회자, 기도, 성만찬등 봉사에서 제명하였읍니다.
    그리고 어제는 2부 찬양팀중 안은숙권사, 조흥선집사는 찬양팀에서 내려오라고 하였으며
    은혜주일학교 몇 성도들에게 교회 출석을 안했으면 좋겠다는 명령? 권고? 하였다고 합니다.

    목사님
    이런 결정은 목사님이 예배의 주인 내지는 주체로 생각을 하시고 하는 행동이십니다.
    예배을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예배의 주체는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모든 성도들입니다.
    목사님은 예배순서중 설교부분만을 맡으신 직분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강단에 스는 설교자, 성가대, 사회자, 기도하는 사람만이 예배의 주체이며 교인들은 그것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가는 것이지 예배를 보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구약시대 제사장의 제사를 생각하시고 계신데 우리는 모두 만인 제사장입니다.
    목사님만 제사장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모든 성도들이 주님앞에 나올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는데 목사님이 목사님의 기준으로 선별하고 제재한다는 것은 비성서적이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지 않는 이단성으로도 보일수 있읍니다

    목사님은 목사님의 기준으로 제단에 스는 사람을 판단하시는데 목사님은 겉으로는 아주 실수도 없이 흠없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부단히 노력하시지만 마음은 어떠신지요?
    그렇게 마음의 죄도없이 깨끗하신지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 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속에 있지 아니 하니라.” 요한 1서 1:10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 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곳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한 1서 3:15

    이 성경귀절에 대해서 자신이 있으시면 지금처럼 계속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성가대, 목요찬양팀에도 목사님 무척 반대하고 싫어하는 교인들 많이 있읍니다.
    다 내려오라고 하시지요.
    목사님을 좋아하는 교인이 하는 행동은 눈감고 목사님을 반대하는 사람은 끝까지 괴롭히는 모습. 참 보기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목사님에 대해 긍휼한 마음이 생깁니다.
    목사님도 목사님과 의견이 다른 교인들에게도 은혜와 사랑 그리고 긍휼한 마음을 가져주십시요.
    그리고 설교도 십자가의 도, 은혜와 사랑, 용서에 대해서도 해줄 수 있어야합니다
    무리한 부탁인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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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송인규 교수의 “아는 만큼 깊어지는 신앙”이라는 책에서 제사장 부분을 발췌하였읍니다.
    (송인규 교수는 총신대 신대원, 미국 칼빈 신학교, SYRACUSE 대학교 신학, 변증학 Ph.D
    평신도 신학의 핵심 정신을 지향하는 새시대 교회 목회자로 10년간 봉사했고, 현재는
    합동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음)

    제사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사를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종”이라고 부르는 예를 흔히 접할수 있었다.
    특히 부흥회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온 초청강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런 호칭으로 불르기를 좋아 했다.
    또 본교회의 목사들도 자신의 권위가 도전을 받든지 일사 불란한 위계질서가 삐그덕거린다 싶으면, “감히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을 대적하느냐?면서 자신의 위상를 이런 식을 드리대곤 했다.
    결국 부흥 강사건 해당 교회 목사건 그 주장하는 바는 동일하다.
    즉 그들이 구약에 등장하는 “제사장” 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목회자는 구약의 제사장 계층에 해당하고 일반 교우는 평범한 백성과 같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목회자는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같은 계층의 사람들인가?”
    사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 당시 주장한 “만인 제사장” 이론이 부분적으로는 이미 답변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만인 제사장 이론 만으로는 충분한 답변이 되지 못한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이런 상홯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목회자와 구약의 제사장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1. 구약시대: 제사장
    구약시대 제사장들은 일반 백성과 두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신분이 일반 백성과 달랐다.
    제사장의 효시인 아론은 하나님의 선택과 소명에 의해 제사장이 되었고(히 5:4),
    그후에는 세습에 의해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
    다시말해 구약시대 제사장이 되려면 레위 지파에 소속되어야 했고, 레위지파 가운데서도 아론의 후손으로 태어나야만 했다.(참고 출 40:15)
    이처럼 아무나 제사장이 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제사장은 아예 신분에서 조차 일반
    백성과 차이가 있었다.

    둘째, 제사장들은 직분을 수행하는 기능면에서 일반 백성과 달랐다

    (1)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속죄 제사를 드리는 기능(민 15:25)
    (2) 백성을 축복하는 기능(민 6:23-26) (삼상 2:20-21)
    (3) 백성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기능(삼상 7:9)
    (4)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기능(신 33:8,10) (스 7:10-11)
    (5) 백성에 대해 종교적 리더십을 행사하는 기능(삼상 7:3)




    2. 신약시대: 만인 제사장론의 요체
    신약시대로 접어들면서 제사 제도에는 총체적인 변화가 찾아 왔다.
    대표적인 예가 로마서 12장 1절에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때문에 제사 제도에 이처럼 놀라운 변화가 찾아 왔단 말인가?
    한마디로 답하자면 참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이런 엄청난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바로 여기에 복음의 핵심이 있고 만인 제사장론의 요체가 담겨있다.
    예수께서는 메시야중에 메시야요, 구약시대 인간 중보자들(제사장, 왕, 선지자)의
    완성으로 오셨다.
    따라서 그분은 우리의 참되고 진정한 제사장이시기도 한 것이다.

    왜 그는 제사장으로 오셔야 했는가?
    첫째 제사장이 자꾸 죽고 갈리기 때문에 제사직을 일사 분란하게 안정된
    상태로 유지되지 못하고 있었다.
    (참고 히 7:23)

    둘째 제물 또한 문제었다. 근본적으로 범죄의 주체는 인간인데 어떠해 짐승이
    대신 형벌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참고 히 10:1, 3-4)


    이처럼 예수께서 멜시세덱의 반차를 좇아 제사장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는 구약
    제사에서의 제사장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느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히 7:24-25)

    예수께서 이처럼 구약의 제사 제도를 보완하기위해 오셨고, 또 그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제사 제도가 종언을 고했다는 증거는, 그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지성소로 통하는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둘로 나뉜 사건에 반영되어있다.

    즉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셨으므로 우리도 제사장이 되었고 그리스도께서 제물이
    셨으므로 우리도 제물이 되었으며, 우리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때문에
    이와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특권을 허락 받은 것이다.

    3.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오늘날의 목회자
    앞에서 나는 구약 시대의 제사장이 신분및 기능면에서 일반 백성과 차이가 남을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와 연합할 때 우리도 제사장이 되었음은 앞에서 밝힌바 있다.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적하게 하려하심이라.( 벧전 2:9)

    그 하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계 1:5-6)

    그렇다면 기능면에서는 어떠한가?
    (1) 제사를 드리는 기능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동일하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롬 12:1)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
    하시느니라. (히 13:15-16)

    (2) 복을 비는 기능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져 있다
    너희을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롬 12:14)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벧전 3:8-9)

    (3) 중보기도를 하는 기능 역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동일하다

    살펴본대로 제사장의 세가지 기능, 즉 제사, 축복, 중보기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동일하게 허락되어 있다

    그러나 말씀을 가르치는 기능과 종교적 리더쉽을 발휘하는 기능만 그리스도인 사이에
    차이가 남을 알 수 있다.

    결론: 따라서 오늘날의 목회자는 자신이 구약시대의 제사장처럼 일반 그리스도인과 신분
    조차 다른 것처럼 잘못 생각하여 거들먹거려서는 안 된다.
    또 자신만이 제사. 축복. 중보기도를 할 수 있는 양 오해해서도 안된다.
    단지 말씀을 가르치는 것과 신앙적 지도력를 발휘하는 면에서는 경험을 쌓고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여 일반 그리스도인과 차별되어야하고, 이로써 다른 일반 그리스도인
    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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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담임목사님이 예배를 마치자마자 로비로 나오더니 몇사람과 얘기를 마친후 신정하장로님, 한상철 장로님, 최관호 장로님 그리고 몇몇 권사님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눈은 저주의 빛을 띄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최장로님이 악수를 청하였으나 받지도 않고 몸을 확돌리더니 지하실로 내려가면서 최장로님을 무섭게 응시하였다.
    4-5계단 내려갈때까지 쳐다보았다.
    나는 그동안 그래도 목사님이기에 갖고있었던 마지막 희망의 끈이 끄너지는 것을 느꼈다.
    세상의 원수를 만나도 그렇게는 하지 못할 것이다.

    설교에서 주님의 음성을 못듣는 이유중 하나는 강팍한 마음이라고 하고나서 바로 나오자마자 그런 행동을 하는 목사님을 우리는 어떻해 받아드려야할지 정말 혼돈이 온다.

    나중에 들어보니 식당에 내려가서 여러 마음에 안드는 교인들 바로 앞에까지 가서 그런 눈으로 응시를 하였다고 한다.

    하나님은 아신다
    하나님은 보셨다
    다른 성도들도 보았다.
    교인이 되기전에 인간이 되어야하고
    목사가 되기전에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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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찬양팀에 남을 자 누구랴?2011년 7월 25일 오후 1:44

    차빼고 포떼면 ,카리스 찬양팀에 남는 사람은 홍정균전도사 한 사람뿐입니다.

    그렇찮아도 더우 날씨에 땀 빼며 수고하는 홍 전도사 보기에도 안타깝던데요, 이제 혼자 남네요?

    그건 그렇고 왜 안은숙권사/조홍선집사를 카리스찬양팀에서 내려 오라고 하는 것인지요?

    평신도의장님, 평신도를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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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저도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2011년 7월 25일 오후 4:06

    우연찮게 저도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무섭더군요.

    광선을 내뿜으며 째려보는 그 눈길이.

    사랑의 눈길을 기대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째려보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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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저도 그현장에 있었어요.
    순간 제 눈을 의심했고,그 상황이 밍어지지가 않아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까지 했어요.
    장로님과 권사님들 있는곳에 곧장 걸어오더니
    정말 무섭게 노려보고 가더군요.
    바로 정면까지 마주보고 죽일듯한 표정으로...
    악마의 눈빛이 그럴것 같아요.
    사람들이 순간 너무나 당황하고 어이없고 믿을수 없는 표정이되었어요.
    그러면서 목사님 나갈때 사람들도 무서운 눈빛으로 둘러보더군요.마치 우리들도 한패인것같이 보는듯...
    무섭더군요.
    충격이었어요.
    그날 하루종일 그 눈빛이 생각이나서 힘들었어요.
    목사님은 평범한 사람이 아닌게 확실한것 같습니다.
    내눈으로 보기까지는
    그래도 1%라도 믿으려는 심정이었던것같아요.
    보고나니 정말이지
    비정상입니다.
    우리교회 정말이지 큰일났습니다.
    목사님 무슨일 낼것같아요.
    하나님! 우리 성도들을 도와주세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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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저도 보았습니다

    그 광기어린 눈

    누군가를 곧 찢을것 같은 흰자가 허옇게 보이는 눈

    아 너무 소름끼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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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저도 거의 매주마다 보았습니다.
    뱀, 사자, 호랑이, 야수의 눈으로 2부예배에서
    여러분들이 목사님을 보시는 눈길을,
    우연히 본 것이 아니라 매 예배 때마다 보게 됩니다.
    섬뜩함을 지나서, 증오함을 즐기는 눈들을
    보았습니다. 목사님을 정신이상자로 몰고 가고 있는
    목사님의 비방을 즐기시는 여러분들의 눈으로 보신
    목사님의 시선이 어떻게 사랑의 시선으로 느껴지겠습니까?
    하나님의 음성과 지도하심이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목사님을 사랑의 눈으로 보시면 목사님의 눈 역시 선하게
    보일겁니다. 먼저 사람의 눈으로, 사랑의 눈으로,
    긍휼한 마음을 우리가 우선적으로 먼적 가져야 할겁니다.
    목사님은 선하시고 선한 분입니다. 이제 그만들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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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31번

    조흥선 집사, 안은숙 권사는(안상국 장로 부인)
    교회의 근간을 흔드는 사람들이라고 최목사님 혼자 광기어린 눈으로 생각 하셔서 쫓아 낼려 하고 있지만

    지금 카리스 찬양팀이 문제가 아니에요.

    2부 예배에 나오는 사람들이 보기 싫어서 아주 2부 예배를
    없앨려 한다는군요.(ㅂ 불법 원로장로 의장이 추진중)

    이러니 담임 목사라는분이 이렇게 안하무인 광기어린
    행동을 하는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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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34번

    외 안나오나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점잖케 쓰셨네요.
    최권사님은 아니군요 ㅎㅎ
    본모습데로 쓰세요. 답답해 하지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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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김미리 집사님을 째려보던 뱀눈으로 여러 교인들을 째려 보셨다면서요. 그러시고는 (증인들도 많은데)
    목사님이 원로 장로 회의에서 김미리 집사님을 그렇게 보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시면 안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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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34번

    웃음이 나오네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옴니다.
    그 눈빛을 받아보세요. 꼭 받게 될겁니다. 올해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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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34번 쓰신분은 목사님의 그 눈을 아직도 모른다니 정말 답답하군요 선한분이라고요? 어떤것이 선한가요? 지금 현재 우리교회에 이런일이 일어나는 것이 선한분 때문인가요? 도대체 34번님의 선하다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성도들을 노려보는것, 성가대원들을 찬양못하게 하는것,은혜주일 학교에서 봉사하는 봉사자들을 그만두게하고 자기뜻과 다른 사람들을 노려보고 치리하고 ... 이게 선한건 가요? 이런게 선하다면 인생살기 참 편하겠네요. 우리가 주님안에서 선하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시다면 믿음생활 다시 하시죠?아직도 아직도 모릅니까? 모르면 댓글도 제발 달지 마세요 읽는사람 열 받아서 선한눈빛 안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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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34번님은 정말 못말리는 분이시군요.
    저도 그 현장에 있었던 한 사람인데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뒤엎는 목사님의 행동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래도 일반 성도가 아닌 목사인데 아주 평범한 사람 보다 더 상식 이하의 모습을 보이더군요.
    지금까지 그래도 담임 목사라고 우거지(?)로 쫒던 성도님들도 그 날 현장에 계셨던 분들 만큼은 이제서야 실체를 보았다고 많이 혼란스러워 하면서 우리 교회의 미래를 걱정하시더라고요.
    솔직히 저는 목사님을 측은하게 생각합니다.
    목사, 교회, 신앙, 믿음 등등등..............이전에 우리 모두는 출발이 부족한 인간이었고 그랬기에 실수, 죄 등을 수 없이 저지렀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의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데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를 보내 주셔서 구원 받았죠.
    그런데 사람의 상식을 초월하는 행동을 하시는 목사님을 뵐 때 혹 이것이 병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자격지심인지 본능적인 자기 보호인지 도무지 기독교인 이전에 한 인간으로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34번님.
    목사님을 생각하시고 보호해 드리고 싶은 그 마음은 충분히 알고 또 뭐라고 토를 달기는 싫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목사 이전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무시하거나 모르실 때 좋은 모양으로 목사님께 조언해 드리는 것이 진정 그 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34번님.
    34번님이나 님의 가정이 나름대로 열심히 교회를 섬기시는데 평신도인 장로, 권사 등이 아닌 담임목사가 그렇게 한다면 과연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회개하며 아멘 할 수 있으시나요?
    저는 솔직히 못 할 것 같습니다.
    제가 50년 이상을 교회를 다니면서 배운 것은 수 없이 많지만 한가지 확실히 가슴에 새겨두었던 것은 그 어떤 죄(설령 살인을 했다 하더라도)를 지은 사람도 우리 인믿는 사람은 정죄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회, 세상적 법 등과 잣대로 나름대로 죄를 묻기 때문일 것입니다.
    2부 예배를 위해 헌신하는 안 모 권사, 조 모 집사가 무근 큰 죄(?)를 지었기레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34번님.
    목사님을 위해 나름대로 애쓰시는 것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짐작컨데(어렴풋이 님이 누구신지 알 것 같습니다.)이런 방법의 사랑과 충정은 님의 의가 나름대로 들어갔다고 감히 판단하기에 혹 나중에 큰 상처를(목사님 또는 성도님 등에 의해)받으실 것 같아 우려되는 마음에서 드립니다.

    그리고 제발 자신과 자신의 가정이 당하지 않았다고(그 아픔을 절감하기 쉽지 않기에) 아주 쉽게 은혜스러운 말(참고 기도하자, 이런 과정이 믿음을 성숙시키는 과정이다, 그래도 하나님이 보내신 목사님인데 순종해야되는 것이 아니냐 등등등...........)
    정말 토할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멋지게 포장된 말을 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믿음의 성숙도가 직분에 나타났다고 여기는 극소수 장로, 권사님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일시적인 현상이고 또 이 순간 순간들을 쉽게 넘기려고 하지 마시고 신앙인 이전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지렛데인 상식이란 것을 놓고 생각들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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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요 며칠전부터 컴퓨터 작동이 느려지고 시원찮아서

    알아본즉 악성변종 바이러스가 하드에 뱀이 똬리를 틀듯

    자리잡고 있었다는 이야기.

    너도나도 조심하자 씅나미 바이러스를.

    쓰나미만 무서운게 아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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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35번님을 34번으로 표기한 것 같습니다.
    븐명 35번님의 글에대해 쓴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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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41, 43번의 글을 올린 사람입니다.
    혹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 부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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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헨리 나우웬 중에서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누구를 대하든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타인의 죽음을 볼 때마다 내가 작아질 수 있기를
    그러나 나 자신의 죽음이 두려워
    삶의 기쁨이 작아지는 일이 없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상대가 나에게 베푸는 사랑이
    내가 그에게 베푸는 사랑의 기준이 되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모두가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기를
    그러나 나 자신만은 그렇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언제나 남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살기를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나에게 용서를 구할 일이 없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기를
    그러나 그런 사람을 애써 찾아다니지는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언제나 나의 한계를 인식하며 살기를
    그러나 그런 한계를 스스로 만들어 내지는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삶이 언제나 나의 목표가 되기를
    그러나 사랑이 내 우상이 되지는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모든 사람이 언제나 소망을 품고 살기를

    출처 : 헨리 나우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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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2부예배 찬양을 인도하시는 안권사니께서 목사님 등의 이해되지 않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기에 이번 주 인도를 계속하시겠다는 소식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말이 쉽지 권사님께서 나름대로 힘들어하시며 기도 가운데 결정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무슨 편을 가르자는 것이 아니고 분명 힘든 선태인 만큼 특히 2부를 드리는 성도님들은 더욱 기도로 응원해 주시고 이번 주 부터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비교할 가치도 없는 일이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상에서도 자제해야할 불경스러운 욕으로 성전을 어지럽힌 민 모 성도님도 3부예배 성가대에 서서 유독 아멘을 외치며 목사님을 성원(?)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그렇다고 우리 모두는 민 모 성도님을 성가대에 서지말라는 등 정죄를 해서는 안되겠죠. 우리도 같은 죄인이고 교회에서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죄가 난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저의 확고한 생각이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교훈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처 받지 않는 범위내에거 목사님의 권면이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안권사님의 찬양 인도는 바로 우리가 지켜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기도로 승리하신 안권사님을 위해 계속 기도 부탁드리며 개인적으로 따스한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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