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문지기입니다.

이곳은 우리 교회에서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야기들을 토론하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당분간 댓글 사용 못함을 양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2011년 6월 2일 목요일

담임목사 중독현상을 논한다


한 성도님으로부터 받은 교회개혁연대에서 퍼온 칼럼입니다. 우리가 조심해야할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희 모두와 목사님이 이런 덫에 빠지지않았는지 다시 한번 뒤돌아봅시다
====================================================
일반적으로 사람이 마약이나 사상 혹은 리더(지도자)에게 중독이 심하게 되면 나타나는 보편적인 두 가지 현상이 있는데, 첫번째는 중독자가 어느 때에 자신이 중독이 되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중독자가 자신의 중독을 담당의사나 치료자에게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교회에서도 담임목사에게 중독된 교인들을 수없이 만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중독교인들이 드러내는 현상의 정점에는 예수님 대신에 그 자리에 앉아있는 담임목사가 정말 예수님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런 것들이다.

1. 담임목사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의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 전해도, 복음을 전했는지 아닌지 아무런 감각도 없이 그냥 은혜롭기만 하다.

2. 교회의 모든 결정이나 그 결정을 수행하기 위해서 행하는 전횡과 독선도, 담임목사가 가진 당연한 권한을 교인들에게 정당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3. 신앙생활의 초점이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성화되고 교인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담임사에게 충성된 교인이 되어서 교회에서 고속 승진하여 권력의 핵심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데 있다.

4.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생겼을 때에도 기도하면서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담임목사에게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고 그의 결정에 아무런 생각없이 전적으로 자신을 맡긴다.

5. 담임목사가 아무리 교만하고 잘못된 언행으로 동료 교인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겨도, 무조건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처리해 주신다면서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왜 스스로 믿음으로 이겨내지 못하고 목사님을 힘들게 하느냐고 오히려 역정을 낸다.

6. 담임목사가 혼자 결정한 무리한 사항에 대해서 교회형편이나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회의 시간에 반대를 하면, 왜 하나님의 종에게 감히 대드느냐고 눈을 부릅뜬다.

7. 입에서 연달아 우리목사님 우리목사님이 나와도 예수님은 입에서 나오질 않는다.

8. 헌금할 때에도 교회를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담임목사의 눈에 제일 잘 띄는 특별헌금이나 절기헌금에 치중한다.

9. 신앙의 격려가 필요하고 도움이 필요한 교회의 형제/자매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것보다, 담임목사와 자주 만나고 식사하는 일에 온갖 정성과 심혈을 기울인다.

그외에도 담임목사에게 중독된 교인들이 드러내는 증상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이정도에서 그치기로 하자. 한마디로 이런 담임목사 중독교인들은 '예수교인' 인지 '담임목사' 교인인지 도무지 구분이 가질 않는다.

이런 담임목사 중독현상을 보이는 교인들에게 나타나는 증상들은, 어떤 교회의 문제가 담임목사로 인해 불거져 나왔을 때 극대화된다. 단세포적인 2분법을 동원해서 교인들을 목사편이냐 아니냐로 극명하게 나누면서, 담임목사 편에 서지 않는 교인들을 하나님의 종(?)과 주님의 몸이신 교회를 해치는 마귀의 하수꾼으로 여기면서 종국에는 교회를 떠나라고 종용하는 것이다. 문제를 냉철하게 보고 그 해결책을 구하기 위해 신앙인의 양심이나 성령하나님의 조명 혹은 말씀에 나타난 해결책의 적용같은 것은 전혀 안중에 없다.
그냥 목사를 위해 승리를 쟁취하면 그만이다.

또 한편으로 이런 중독현상을 가진 교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증상은, 어떤 문제가 생겨나기 전에 미리 바른 믿음과 시스템 혹은 개인적인 조언을 통해 사전에 교회 혹은 목회의 문제를 예방 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목사에게 기울어진 신앙의 눈은 목사가 무엇을 하던지 다 은혜로워 보이니, 진실을 바로 보는 선한 분별력이 상실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 혹은 진리를 향한 선한 믿음이 절대진리가 아니라, 목사의 목회와 설교 그리고 행동이 절대화 되어서 신앙의 전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담임목사 중독은 성격상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먼저는 '자발적 중독' 이고  나중은 '수동적 중독' 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어느 교회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제로 한 바르고 선한 신앙생활을 위해 교회에 나오는 신앙인들이 있는 반면에 교회를 통해서 자신의 명예욕이나 권력을 취함으로써 대리만족을 가질려는 사람들이 꼭 있기에, 보통 교회의 절대권력자인 담임목사에게 스스로 잘 보여서 급속승진을 하려는 '자발적 중독자' 들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교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절대권력자인 목사에게 좀 신앙의 양심에는 걸리지만 그냥 대충 눈감아주고 따라가 주면서 서로 좋은게 좋은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차츰 순응해가는 교인들이다. 여기에는 보통 담임목사가 사용하는 두 가지의 무기, 즉 당근과 채찍이 또한 일조한다. 때로는 담임목사의 권한으로 충분한 자격이 있음에도 어떤 직분에서 제외시켜 버리거나 좀 미달이긴 하지만 살짝 끼워주기도 하는, 쌍 칼 무기에 보통 이런 수동적 중독자들은 완전히 항복하고 적응해 간다.

결국 교회는 담임목사를 정점으로 피라밋처럼 권력구조화 되면서 자발적 혹은 수동적으로 중독된 교인들로 채워져가기 시작하고, 주님의 몸이신 공동체는 목사와 그 주변의 권력자들의 사유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슬픈것은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이 두 중독그룹 중 하나에 끼지 못하면, 교회에서 살아 남지를 못하고 영원한 이방인이 되고 만다. 그래서 둘  중에 하나를 어차피 택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간판은 교회여서 성경공부도 하고 선교사도 보내고 주일 말씀 선포도 있고 찬양도 한다.  그러나 정작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 아니라 담임목사이고,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존귀와 영광은 담임목사에게로 온전히 돌아 간다.

근본적으로 목회와 신앙의 목적을 다시 점검해야 할 시점에 우리는 서 있는 것이다. 




댓글 11개:

  1. 마음의 등불 (누가복음 11장 33절-36절)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닌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빛과 소금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 빛이 나가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더 나아가서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라고 하십니다. 동물원에 있는 원숭이 한 마리가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을 본적이 있었읍니다. 세상은 “눈을 가리는 것은 바보같은 원숭이한테나 필요한 것이다.”라고 얘기합니다. “악은 보지고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말씀에 대한 반응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네 눈으로 무엇이 들어가는지 돌보라. 눈을 조심히 다루고 네 눈으로 들어가는 것들을 잘 감시하라.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이 말해주는 것은 기독교인은 빛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내 삶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값 주고 사셨고, 하나님께서 그 분의 메시지을 내 마음에 주셨습니다. 더 이상은 내 마음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메시지로 살겠다는 고백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매 순간 복음의 메시지로, 성별된 예배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어디를 가던지, 우리는 살아 숨쉬는, 성육신하신 주님의 메시지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부르심이지요. 예수님께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읍니다.
    우리가 어떻게 복음을 전파할까요? 복음에 대한 정보를 계속해서 말합니까? 물론 이 일도 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그저 정보로써 읆어지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복음의 메시지는 우리의 삶으로 살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부터 우리는 우리의 세대 가운데 침묵하는 증인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복음을 삶으로 살되, 마음으로 부터 이것을 외쳐야 할 때입니다. 우리 삶에 비춰지는 복음의 빛이 너무 강해서 그 빛이 주체하지 못하고 우리의 삶 가운데서 뿜어져 나와야 합니다. 그 빛이 진짜라면 결코 숨길 수 없읍니다.

    우리는 이렇게, 문화에 먼저 잠겨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푹 잠겨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빛에 잠기도록 만들어졌읍니다. 안그러면 삶의 모든 것은 가짜로 만들어낸 것이 되고 맙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갈급하게 찾아 다닙니다. 진리를 찾아 다닙니다. 무언가 필요해서지요. 그들 안의 빈 공간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채우는 대부분의 것은 그져 과장된 가짜에 불과 합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빛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슬프게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떤 자도 멸망치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지만 결국 복음에 응답하지 않는 사람이 있지요. 이 복음은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 이십니다.

    당신께 지금 질문합니다. 세상을 향한 빛과 소금이 되실 준비가 되셨습니까? 하나님께 당신의 몸을 드릴 준비가 되셨습니까? 당신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두 주님께 드릴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당신의 마음에 할례를 행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우리 스스로를 속이고 또한 죽이는 “과장된 가짜”들을 끊어낼 준비가 되셨습니까?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답글삭제
  2. 1번 부터 9번 까지 있네.
    음 나는 몇번에 해당하는 교인일까?
    에그 부끄러워서 말 몬하겄네
    왔다가 그냥 갑니다.

    답글삭제
  3. “내 목회입니까? 하나님의 목회입니다.

    한국에 계신 한 목사님이 쓰신 글입니다.
    그는 “목회한지 2년도 안된 기분이다 항상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의 ‘행복목회’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내 목회 철학은 이렇다! 나의 목회관은 이렇다!”라고 하면 안된다. ‘우리 목회’가 아니다. 목회자는 ‘주님의 목회를 수종드는 종들’일 뿐이다”라고 했다.
    경건의 능력을 보이라
    주님은 2천년 전 성령으로 잉태되어 유대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지만 그때부터 삶을 시작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창세 전부터 계신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하늘 영광 옥좌를 버리시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신 것은 모든 사람들의 전인 구원을 위함입니다. 이것은 구약에 여러 차례 예언되어 있음을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핵심이 되는 예언이 이사야 53장 5절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런데 주님은 이 지상에 탄생하신 후, 그 예언 그대로 허물로 상처받고 정서적으로 흔들리는 사람들을 바로 세워 주시고, 불안과 스트레스 속에 헤매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시고, 죄악으로 찌들어 가는 사람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빛이 어둠을 만나면 어둠이 도망가고, 역사 속에서 어둠이 빛을 이긴 역사가 없듯이 예수님은 어떤 병자를 만나도 병을 치료하시고 어떤 귀신을 만나도 귀신을 쫓아내시면서 전인적인 구원의 역사를 펼치셨습니다.

    여러분! 목회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내 목회 철학은 이렇다! 나의 목회관은 이렇다!”라고 하면 안됩니다. ‘우리 목회’가 아닙니다. 목회자는 ‘주님의 목회를 수종드는 종들’일 뿐입니다. 주님의 목회관! 주님의 목회 철학을 따라 목회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내 목회는 이런 것이다!’라고 하면 그건 하나님이 고개 흔드실 일입니다. 목회를 80년 동안 한 분이 있다 할지라도 그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의 목회는 영혼만 구원하시는 목회가 아닙니다. 정서적으로 구원하시고 병으로 고생한 사람을 구원하시고 스트레스, 불안으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시는, 전인적인 구원의 역사를 하시는 분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때때로 눈에 보이는 기적, 이적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중풍병자를 일으키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는데 주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육신의 병, 육신의 고통에서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건, 그 이적을 통해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방편으로 쓰신 것을 우리가 압니다.

    여러분! 만일 주님이 아름다운 설교만 하시고 능력이 흐르지 않았다면, 주님이 바다에 계실 때 사람들이 갈릴리 바다로 모였겠습니까? 주님이 산에 계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모였겠습니까? 아닙니다. 니고데모! 그 자존심 있는 사람이 주님께 밤에 찾아가서 묻는 동기가 어디 있었습니까? 만일 예수님이 말씀만 전하시고 기적,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행하지 않으셨다면 결코 니고데모는 찾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아픔이 무엇입니까?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목회자들이, 성도들이 너무 많다는 데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경건의 능력이 없는 게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목사님이고 전도사님이고 유명한 목사님인데, 능력이 없는 게 자신에게 고통이고 교회에게도 고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렇게 능력이 흐르는 사역을 하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병 고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이 영혼 구원의 큰 방편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승천하실 때까지 치유사역을 중단하지 않으시고 사도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후 공적으로 제자들에게 처음 나타나셨을 때, 심각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 그리고 옆구리의 창 자국, 손의 못 자국을 보여 주신 다음에 다시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것처럼나도 너를 보낸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전인 치유를 하라고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세상에 보낸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들은 그 위임을 받은 후에 예수님께서 하신 그대로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쳤습니다.

    사도들이 일하지만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그대로 하기 때문에 주님의 사역으로 꽉 찬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고 아무리 훌륭한 문필가이고 아무리 놀라운 인격자라고 해도 그에게서 능력이 나가지 않았으면 사람들이 그를 천사로 대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넬료가 시골 어부 출신 베드로를 뭐 존경할 점이 있다고 그 앞에 엎드려 절했겠습니까? 한 번 설교하는데 삼천 명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능력이 흐르니까 ‘아 저분은 영적인 인물이구나.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해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듯이 엎드린 것 아니겠습니까?

    이미 주신 능력을 발휘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교회를 진단하기 전에 자기를 진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를 키우기 전에 자기 영적 키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 자신의 영적인 키를 체크하고 예수님의 사역, 베드로의 사역, 바울의 사역, 나의 사역을 비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사도들에게 뿐만 아니라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주님의 사역을 위임하신 줄을 확실히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라고 하신 말씀은 사도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주님이 보내신 자, 주님의 대행자로서 주님의 목회를 펼쳐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는 일을 맡기실 때 일만 맡기지 않으십니다. 일을 감당할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으로 파송하실 때에는 일만 맡긴 것이 아닙니다. 능히 애굽의 바로를 꺾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능력도 모세에게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치유목회의 사명을 주실 때에는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를 보내노라.”하신 다음에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능력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이미 우리가 받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능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답글삭제
  4. 9번-신앙의 격려가 필요하고 도움이 필요한 교회의 형제자매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것보다, 담임목사와 자주만나고 식사하는 일에 온갖 정성과 심혈을 기울인다.

    위 9번 조항을 보니 궁금증이 일어 평신도대표 장로님께질문드립니다.

    시무장로님들중에서 건강이 악화되 최근 병원 입퇴원을 반복한 모집사님 심방을 하신분들 계시면 좀 알려주시기 바람니다. 그래도 저희 성도들 보담 훨씬 여러면에서 모범을 보인분들이 장로님 되시는거 아니겠어요.

    답글삭제
  5. 4번 익명입니다.
    질문드리고 만24시간 이상을 기다렸는데 no answer.
    평신도대표이신 장로님이하 시무장로님들 한분도 환자심방 안하시고 대신 담임목사님주위에만 계셨다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그러면 시무권사님들께 질문드리겠어요.
    요새 병원에 입퇴원 반복한 집사가 누구였지? 할것같아 친절하게 영어이니셜로 여자 "O"집사라고 알려드리지요. 요즘 활약이 대단하신 권사님들을 비롯해서 몊 분이나 병원심방 다녀오셨는지 제발 좀 알려주세요. 다녀오신 장로권사님들은 이 블로그에서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무슨 댓글을 달던 제가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답글삭제
  6. 4.5 익명.
    님는 익명으로 댓글 달지만
    예수님도 남모르게
    심방하시니

    시무 장로 동태나 살피지말고
    주님이 주신 사역과 님의 생업에
    전념 바랍니다.

    답글삭제
  7. 6번님 글 보고 승질나서 댓글 답니다. 4번 5번 댓글보았고 6번(비겁하십니다) 댓글도 보앗습니다. 예수님도 남모르게 심방하신다고요? 그래서 예수님처럼 남모르게 댁도 심방하셨슴니까? 할말 없으몬 차라리 가만히 게십시요. 비겁하게 뭐? 예수님도 남모르게 심방하신다고? 이런 치사한 인간들이 있나요.
    그라몬 댁들은 무슨 환자고 병자고 간에 예수님이 남모르게 심방하실테니깐 당신 부인이 암수술을 받는지경에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목사장로 심방도 기다리지 않켔다는 말씀인가요.

    6번님의 받은 주님 주신 사역 List 에 아픈환자 병원심방은 아예 없는 모양이지예? 6번님이 장로인지 권사인지 집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가 다른건 모르겠지만서두 다른블로그는 서로 질세라 댓글달던 장로님들인지 권사님들인지가 왜 이거저거 떠나서 아픈 환자 병원심방에 관한 질문에는 꿀먹은 벙어리고, 어느분인지 6번님처럼 대타로 나서서 궁색하게 댓글이나 다는지 참 댁들의 모냥새가 불쌍합니다.
    하기사 죽겠지. 가마 보니 마 이건 안봐도 비데오 이네요.
    블로근지 익명의 바다에서는 숨어서 댓글로 열등감이나 해소하겠지만, 뻔히 이사람 저사람 알고있을 병원심방 물어보니 간적이 있어야 이 블로그에서라도 할 말이 있지 ...쯪 쯪
    평신도대표장로님 무슨권사님들 지가 봐도 하실 말씀 없으시겠네요. 아니 이것도 억지라고 하시려나?
    한번 찾아보시지요. 무슨 장정인지 몰라도 장로권사의 직무에 아픈환자 심방이 있는지 없는지!!!!!

    답글삭제
  8. 어허 7번 보시쇼. 아니 안즉도 이런 순진헌 냥반이 있다니?
    아니 그걸 몰러 댔글씩이나 단다는 말이요 시방?
    병원에 입원했던 사람이 누군질 몰러두, 아 그래 담임목사가 신경을 썼다면 평신도대표 장로부터 시작해서 피피알씬가 계란인가 무엔가 위원장인지 가만 있었겠느냐 이거지. 아 입은 삐뚜러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구, plain and simple 우리 암만 익명뒤에 숨어있다지만, 평신도대표님이나 PPRc위원장님이나 남성중창인지 툭하면(입만열면)그리스도의 사랑이 어쩌고 하신 분들 아 글쎄 성도님이 죽음의 고통속에서 신음하고 있을때 당신들 평소에 거룩한 모냥으로 말씀하시던 고 말씀대로 행하셨는지를?

    답글삭제
  9. 7번 익명님
    다혈질이시네.

    하여간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죠?

    그래서
    심방간다고 광고하고
    다니는 분도있더라고요.

    전에 다녔던 교회에서는
    설교준비를 어려워 하셨던
    목사님께서는 심방만 갔다오면
    심방에서 보고 들었던 일을
    기사 작성하듯이
    세밀하게 묘사해서
    거든히 20분 설교를
    맞치시곤 했지요.

    그때 생각 났던게
    평신도 선행은 오른손이 한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한것이 맞지만
    목회자님 선행은 광고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그런데 4.5.7익명님은
    그래도 교회 지도자급
    또는 직책을 받으신 집사님 이상은
    심방을 하면 알려야 하는것 아니냐
    하는 것으로 들리네요.

    물론 본질은 심방 많이 하셔야 된다는
    말씀이지겠지만...

    제안 한번 할께요.
    앞으로
    이런 워치하지 마시고요
    그냥 침묵으로
    기다려 보세요.
    하나 안하나.

    떠나신 목사님은
    레오니아 시절에는 헌금이야기를
    전혀 안하시고
    당신은 헌금 이야기를
    안하시겠다고 했지요.

    그리고 세월이 바뀌어
    잉글우드 시절은 헌금이야기가
    수시로 하셨지요.

    당시나 지금이나
    자아가 살아있어서
    헌금 이야기하는 날에는
    소원을 담아 준비한 헌금 봉투를
    주먹에 꽉지고 그냥 가져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헌금은 자발적인 마음에서 하는것이다.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하여간 저를 포함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입니다.

    다양성과 다혈질은 축복이지요.
    이런 에너지를 연결해서

    가나안 복지를 정복하듯이
    미국을 정복하여

    우리 민족과 자손들이
    만만세대 살아가는
    가나안 복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답글삭제
  10. '담임목사 중독 현상'????

    나목사님때 말씀인지?

    답글삭제
  11. 9번 익명님, 다혈질이라고 한말은 빈정된것 맞죠?
    다혈질은 명랑하고 따뜻하고 활기차고 열정적인 기질의 성격이다. 다혈질은 다정다감한 성품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곧 잘 마음 문을 열고 친구가 되어 준다. 이런참뜻은 몰랐겠죠.:) 밴댕이 속같이 좁은 사람보단 훨난것 같은데!
    갈19-10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찌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한번 묵상하길 바랍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요. 심방은 사람들 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으시라고 하는것입니다. 나이 먹었다고 다 존경받는 노인은 아니지요! 받을만 하니 받겠지요?
    오른손이 한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이해 하시나요? 남에게 보일요량으로 하는게 아니지요. 예수님의 지체안에 한몸이 되면 보지 않아도 다 느끼게 되고 이해가 되는데 굳이 말로 해야하나요? 무식하다고 해서 배울수 있느게 있고 알수 없는것이 있지요.
    침묵은 무지한자들이 필요할때마다 부르짓는 자기의 합당화가 않일까요? 말은 구구절절 잘하시는 것같은데 생명이 없네요. 되도록이면 앞으론 생명이 있는 살아 있는 말을 하도록 연구해 보심이 어떨런지요! 저주의 씨를 뿌리지 마시고 사랑의 씨앗을 뿌려보세요. 삶이 많이 행복할 테니까요…
    참고로 헌금은 내 하고싶을 때나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하늘나라에 쌓아놓는 적금이란 말입니다. 내 돈이 않인되도 말이에요…
    뿌린데로 거둔다는 말 명심하시고 앞으론 사랑의 씨앗을 뿌리세요. 잘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잘못한걸 가르쳐 주는것이 진정한 사랑이지요. 잘했다고 부추기는건 위선입니다.
    부디 위선자의 길에 서지 마십시요…
    화있입니다!!!

    답글삭제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