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서신을 받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임시총회에 일찍나가서 앉아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 교회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간절하고 설래이는 마음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화해하기위한 노력을 하실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 말하신 허심탄회한 대화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문장로님의 색다른 회의 진행방식이 오늘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네분이 나와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설명를 하고 질문은 종이에 써서 제출하면 답변하는 식으로 회의를 진행하겠다고 했습니다. 일방적으로 이것이 진실이라는 식으로 한쪽의 해명이 2시간동안 계속되었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불만도 커져만 갔습니다. 이의나 질문사항을 종이에 쓰라고 하며 그 많은 질문지들을 다 걷어가 놓고, 결국은 몇 가지만 다음 번 임원회의에서 다루겠다며 그냥 지나가려 했습니다. 이것이 목회서신에서 말하던 허심탄회한 대화의 장인가요? 제가 꿈을 꾸고 있었습니까? 회의는 점점 시끄러워져 가고 경찰까지 오게되는 그런 추악한 사태가 벌어집니다. 단지 이의가 있어 손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저 개새끼들, 시끄럽게 할려고 작정들 했구나"로 욕까지 먹으며 희망에 부풀었던 나의 마음은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이것이 화합하려는 용서의 시작인가? 이것이 우리들의 본모습인가? 예수님께서 겨우 이런 우리들을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 블로그를 닫아주면 이번 교인총회가 화합의 시작일 수 있다는 모권사님을 비롯한 8분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수많은 공갈과 협박에 굴복하지 않던 제가 블러그를 자진해서 내렸었습니다.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목사님께서도 이런 결과를 원하지 않으셨을텐데, 도대체 누구의 아이디어로 이런 방식의 회의를 추진했을까요? ㅁ장로님? ㅊ장로님? 시무장로회? 아니면 목사님? 화합을 생각하기는 한 것일까? 한가지 더욱 실망한것은 목사님께서 시끄러워지는 양 진영의 싸움을 그냥 담담히 보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의 영적지도자이면서 믿음생활의 아버지 역할을 한다라고 하시지요. 어떻게 가족끼리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냥 구경만 하십니까? 묵상 중에 한 아이를 놓고 진짜 엄마와 가짜 엄마가 싸우던 솔로몬의 일화가 떠오르던군요. 목사님, 안타까워 말씀드립니다. 일어나세요. 진짜 엄마가 되세요. 지난 일들이 사과와 용서로 해결될 수도 지금 벌어지는 반목은 목사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고만 계시면 가짜 엄마가 되시는 겁니다.
이와 같은 생각하는 사람이 저 혼자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블로그가 사람들에게 잊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블로그 내려야 한다고 하셨지요? 블로그가 생겨서 부활절 이후에 바꾸려던 목회 방침이 계획대로 안되었다고 하셨지요? 블로그가 내려지게 하실 수 있는 분은 담임목사님이십니다. 부디 저로 하여금 블로그 자진해서 내려주게 해주세요. 정말 부탁드립니다.
말씀하신 회개와 기도로 달라지는 목사님을 기대하며 플러머 올림
" 예배후 오후 1시 30분에는 교인 총회로 함께 모여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서 지난 시간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며 앞으로 의 우리 교회가 나아갈바를 함께 모색하는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답글삭제최목사님이 친필로 성도에게 보낸 편지 내용중의 한귀절입니다.
목사님, 이 블로그에 들어오시는것 앞니다. 그럼 위에 글이 목사님이 친필로 쓰신것 인정하시지요?
어제 총회때의 모습이 목사님이 원하셨던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목사님은 적어도 위글과 같이 "허심탄회,,화합.." 하시기를 원하셨으니까요.
그럼 회의를 주재한 문장로님이 목사님의 뜻에 역행을 하며 회의를 진행하시던 같은데... 제가 의문을 가지는 부분은.....
문장로님 옆자리에 앉아계신 목사님은 어떤 생각을 품고 계셨길래 문장로님의 횡포에 아무런 제재나 코멘트가 없이 침묵만 하고 계셨나 자못 궁금해 집니다. 마치 미리 모든것을 알고 계신분 처럼요.
목사님의 그런 모습을 아무리 합리화하여 생각해 보아도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하여 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1) 문장로님의 머리로는 그런식의 회의 진행은 절때 못한다. 누군가가 뒤에서 지침을 내렸으리라.
2) 그럼 편지와 설교 내용은? 성도들을 기만한거다. 그런 모습에도 은혜 받았다고 박수치는 분들을 충분히 잘 이용하셨다. 과연 정치의 고수다. 하지만 실수(?)는 하셨다. 본인의 속과 겉이 다른 모습을 정확히 교인들 앞에서 몸소 보여 주셨다.
목사님, 어디까지 가실껍니까?
특새동안 어떻게 하나님 만나며,어떤 기도를 드리실껀가요?
결코 그러시지는 않겠지만 혹시하여 여쭈어 봅니다. 목사 직분을 직업 (하나님의 일이 아닌 생업)으로 생각하고 계신것은 아닌지요?
현재와 같이 총회나 임원회의 형식의 문제는;
답글삭제1.문장로님의 편파적인 진행
2.반대편이나 당사자의 의견 개진 기회 전무
3.일방적인 해명만 전달됨
4.최장로님께 욕을 했던 몰지각한 성도와 이에 동조하는 분들
이에 제안을 드립니다.
총회나 임원회의 형식이 아닌 공청회를 통해서 공개적으로 진행했으면 합니다.
1.총 10명의 패널 선정 (각 5명씩) / 당사자 포함
2.중립적인분으로 사회자 교체 (문장로님은 절대 불가)
3.논란이 되는 문제에 대한 패널 간의 논의
4.이에 대한 청중들의 보충 질의
5.시기와 장소는 asap
핵심은 듣기 좋든 나쁘든 하고싶은 이야기를 전부 할수있게끔 회의 분위기가 만들어져야하고, 그럴때 오해든, 문제든 풀고 화합으로 나갈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들리는 소문으로는 서명에 반대했던 일부 장로님들에 대한 징계 (?)가 논의 될수도 있다고 하는데, 만일 이런 상활까지 가게 된다면, 정말 “흩어지는 교회”가 됩니다. 부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의견이 다르다고 나쁜게 아닙니다.
성도님의 안타까운 마음 충분 이해함.
답글삭제But you're barking up the wrong tree.
그러나, 아직도 모르시겠슴까?
대화도 상대가 있어야 되는것 아니냐구요.
그분들 미리 사전에 최목사님의 지시가 있어야되고, 그 지시에
따르는 Puppet 들 같더만, 그런 공청회서 누가 질문하면 Puppet Master 에게 달려가 일일이 물어볼수 없을텐데 공청회가 성사 되겠습니까?
성사된들 허수아비 쑈는 마이 보셨지않습니까.
성도들이여! 진정한 기도를 불 태웁시다!
답글삭제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매 순간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시는 삶을 사셨읍니다. 그 분의 삶 자체가 하나님을 완벽하게 의지하고 살아가는 좋은 예가 되어주셨읍니다.
하루는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것을 보고 말합니다. “저희들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주세요.” 그 말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것처럼 자신들도 기도하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본이 되는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예수님 자신도 이렇게 기도하셨을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셨지만, 죄 있는 인간들과 동일시하길 원하셨으니까요. 예수님께서는 기도가 매너리즘으로 중얼거리는 공식이 아님을 강조하십니다. 또한 종교적인 의식도 아니지요. 그리고 기도가 그져 습관처럼 다뤄져서도 안됩니다. 물론 기도하는데 훈련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지속적으로 간절히 하는 것에 대해서 가르쳐주십니다. 누가복음 11장 5절에서 한 비유를 들어 설명하십니다. 어떤 한 사람이 자신의 친구에게 밤 늦게 찾아옵니다. 한밤중에 친구의 집 문을 두드리며 말하기를, “우리 집에 손님이 왔는데, 대접할 음식이 없어. 우리 집 손님을 위해서 음식 좀 줄수 있겠나?” 그 친구가 침실 안에서 대답합니다. “지금 자고 있었는데, 애들도 마찬가지고. 미안한데 못 도와주겠어. 내일 다시 오면 안될까? 이해할수 있지? 잘못하면 가족 전체가 잠에서 깰지도 몰라.” 그 당시에는 모든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한 방에서 같이 자는 것이 문화였습니다. 아이들과 다 같이 자고 있는데, 얼마나 방해가 되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는 안 도와줬지만, 포기하지 않고 간절히 문을 계속 두드리면, 집 주인이 “이제 화가난다? 내일 다시오라고 좋게 부탁했는데 안 듣고, 아무리 친구지만 화가 난다.” “그냥, 원하는 걸 빨리 줘버려서 더이상 날 괴롭히지 않도록 해야겠다.” 결국 집 주인은 일어나서 그 친구가 원하는 것을 주게 됩니다. 친구가 너무 끈질겨서줘. 여기서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하나님도 이 집주인처럼 화나서, 우리가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도록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냥 줘버리신다는 걸까요? 아닙니다. 이러한 방법의 가르침은 그 당시 많은 랍비들이 사용했던 방법입니다. ‘이것이 맞다면 저것은 당연히 진리이다.’라는 식의 접근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대조를 통해 말씀하시고자 한 것은, 사람이 자신의 친한 친구라는 이유만으로는 원하는 대로 다 주진 않지만, 끈질기게 계속 조르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우리의 지속적인 간구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지요. 만약 사람이 상대방의 지속적인 간구에 이렇게 반응한다면, 우리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분의 이름으로 간구할 때, 하나님은 얼마나 더 기쁘게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의 훈련에 대해 가르쳐주십니다. 계속해서 간구하고, 계속해서 찾고, 계속해서 두드리는 훈련입니다. 하나님의 뜻임이 확실하다면,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요. 우리가 간구하는 것이 집이나 돈이나 낭비하는 것이 아니어야겠지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들 또한 원하신다면 주실 수 있지만서도요. 우리가 간구하는 것은 선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어야겠지요. 성경에 ‘구하여도 받지 옷함은 이기적인 욕심으로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가 내 삶에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구하고, 이 기도를 지속적으로 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말해,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 7:7)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주실 수도 있다’가 아니라 ‘주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장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른 기도여야 합니다. 성경에 ‘구하라’는 동사의 시제는 모두 현재 진행형으로 되어있습니다. 구하고 계속해서 구하라. 계속해서 구하고 구하라. 문을 두드리라. 그리고 계속해서 두드리라, 두드리라. 이것이 바로 기도의 원리인 것입니다. 성경은 구하고 계속해서 꾸준히 구하라고 말합니다. 절대로 구하는 것을 멈추지 마십시요. 우리는 ‘구하는 자에게 민감하자’는 것에 대해서 많이 듣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 민감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진정한 구하는자는 무엇일까요? 진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구하는자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간절하게 구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지속성을 말합니다. 구하고, 또 구하고, 또 구하면 찾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를 할 때에는 이러한 끈질김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구하는 자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자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8).
최성남 목사가 감리사나 감독의 빽으로 위세등등한다 하여도 아니 그보다 더한 빽이 있다하여도 하나님의 진정한 도우심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님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열심을 다해 주님께 구해야 할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교회의 회복을 위하여, 목사가 회개를 하든 아니면 진정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보내 달라고. 우리모두 간절하고 지속적인 기도를 시작해야 할때라고 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하나님의 교회에 기도의 불이 꺼져가고 있습니다. 새벽기도에 불이 붙어야하고 통곡하며 울부짓음이 있어야 합니다. 목요기도회가 타올라야 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뜨겁게 주님을 찬양 하며 기도하며 또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의 사태가 벌어지게 끔 방관한 죄 또한 가볍지 않이 합니다. 또한 속회에서 열심을 다해 기도해야 하고 쓸때 없는 주일 강의 교재 보단 더 이상 믿음의 성도들이 쓰러지고 상처 받지 않도록 서로 의지하며 협력함으로, 또한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합니다. 믿는자들이 이 곳에서 불씨를 모아 지속적인 뜨거운 불길을 다시금 피어오르게 해야 할줄 믿습니다. 지금은 무서운 영적인 전쟁중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 누가 보아도 이길수 없는 싸움입니다.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재현해 놓은듯 암담하고 답답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 의지하고 믿고 나아갈 때 기적이 나타 나리라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저의 마음에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질흙같은 어둠이라도 빛이 솟아 오르면 곧 모든것이 밝아지고 죄 또한 세상 천하에 밝혀지리라고.
우리 모두 다 힘을 합쳐 성령이 자유로이 운행하는 교회가 되길 간절히 기도하고 믿음으로 힘을 내서 한 발 한 발 나아갑시다. 주님께서 반듯히 이 어려움 가운데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매가 풍성히 넘치도록 맺히는 교회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시다.